오늘은 직장 동호회 연역문탐회(연주역사문화탐방회) 창단회 및 탐방회가 있었다.
포항에 살면서 천년고도 경주을 가까이에 두고 산다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하여 왔지만 그렇게 많이
찾지는 않았고 아는 것이 많다고 여길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역사문화 탐방에 시간을 할애 하고자 한다.
주제: "미실을 만나러 서라벌로 가자"
일시:2009.8.29일(토) 포항 롯데마트 16:00~23:00
답사지:벌지지(박제상 유적지) -서출지 -진평왕릉- 저녁식사(육부촌 한식) -안압지 공연(흥보전)
경주 화랑수련원으로 들어가는 일차선 길로 접어들면 금세 '화랑교'라는 작은 다리가 나타난다.
이 다리 아래로는 작은 하천이 흐르는데 그 이름이 남천이다.
남천은 경주의 남쪽인 남산 아래를 흘러흘러 경주 시내로 들어가 북천과 만나고,
남천과 북천이 모인 물은 이윽고 형산강이 되어 포항을 거쳐서 동해로 흘러들어간다.
장사 벌지지 이 비석 뒤로 보이는 솔숲이 바로 망덕사지이다.
절터에는 주춧돌들이 줄을 지어 널부러져 있고, 당간지주도 남아 있다 .
이게 무슨 뜻인가? '장사'라면 길 장(長)에 모래 사(沙)이니 '긴 모래밭' 정도의 뜻일 게다.
과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남천을 따라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을 보면
이곳에 ‘장사’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은 금방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곳에 장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단지 그러한 자연적인 연유 때문만이 아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이곳에서 박제상의 아내는 '목을 길게 늘이고 울었다'.
고구려에 가서 눌지왕의 아우 복호를 구출해온 박제상이 이번에는 왕의 다른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집에도 들르지 않고' 왜국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시중에서 전해들은
그의 아내는 남편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뒤를 쫓았으나
이미 지아비는 저 멀리 사라져간 뒤였다.
죽음의 땅인 바다 너머로 떠나가는 남편을 뒤쫓다가 쓰러진 아내는
남천 이 모래밭에서 목을 길게 늘이고 울었으니 뒷날 사람들은 이곳을 '장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벌지지'란 무슨 의미인가? 박제상의 아내가 장사 모래밭에서 울다가 쓰러졌을 때
그의 친척들이 달려와 그녀를 집으로 데려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혼절한 박제상의 아내 김씨는 몸이 굳어 두 다리가 '뻗치지' 못하는 지경이었으니
사람들은 그녀를 일으켜 세울 수 없었고, 억지로 부등켜 세워도 그녀는 걷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가 다리를 뻗치지도 오므리지도 못하게 된
이곳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벌지지'로 음차하였다
.
서출지 [書出池]
사적 제138호. 면적 7,000㎡, 못둘레 약 200m.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저수지로서
제21대 소지왕(炤知王)의 전설과 관계 있다.
신라 소지왕이 488년 남산 기슭에 있었던 천천정에 거동하였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그 중 쥐가 사람의 말로써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라고 하므로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가 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가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고 있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있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 주므로 왕에게 그 봉투를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거문고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분향하는 중이 궁주와 서로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궁중의 간계를 막았다는 뜻에서
못 이름을 서출지라 하게 되었고 이로부터 음력 1월 15일에 까마귀에 제사밥을 주는
오기일의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서출지 [書出池]
서출지 [書出池]
진평왕릉
안압지
안압지 토요상설무대
안압지 조형
안압지 조형
'국내여행 > 경상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내면 우라2리 생식마을을 찾아 (0) | 2009.09.14 |
---|---|
경주 엑스포 공원내 09년 민속축제한마당 관람 (0) | 2009.09.12 |
[스크랩] 뇌성산 (0) | 2009.06.02 |
[스크랩] 벽종사의 야생화들 (0) | 2009.06.02 |
[스크랩] 장기읍성 (0) | 2009.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