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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북도

직장동료들과 팀파워

by 지너비 2011.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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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11년 7월 27일(수)

장소:양포방파제~구평리 대만회집 ~벽종사~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구룡공원

 

 

 

         양포 작은방파제 


 

 

 




 

 

 

 

         양포 큰방파제  


 

 

 





 

 

 

 

 

 

 

 

구평리 대만회집

 

 

 

 대만회집 정원에서  


            능소화


원추리 & 개망초


 

 

 

 

 

세계 희귀꽃이 있는 벽종사





해맞이

 



 



 



꽃댕강

 

 





 

 

 

 

 

 구룡포 일본가옥거리 & 구룡포공원  

 

일본인가옥거리가 짧은 시간동안에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가게도 생기고 많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네요.

 

 

일본인가옥거리를 가끔 와 보는데 ,

오늘은 기분이 많이 좋지 못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구룡포공원은 일제강점기때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구룡포공원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계단 양측면에 117개 석주(돌기둥)가 세워져 있는데,

일제강점기때  구룡포를 주럼잡던 일본인들의 이름을 빨간글씨로 세겨 놓았으며,

공원내에는 일본 사업가 도가와 야시부로 송덕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후

석주에 새겨진 일본인 이름을 시멘트로 바르고 기둥을 반대로 돌려

현재 앞면에 구룡포 발전에 기여하신 우리나라분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공원내 도가와 야시부로 송덕비도 충혼비 보다 아래로 내리고 송덕비를 시멘트로 발라 두었는데 내용은 알수가 없습니다.

 

역사는 흐르고 흐른다고 합니다.

 

어제의 아픔을 시멘트로 발랐다고 잊지말고 가슴 깊이 새겨 또 다시 아픔을 격지 말아야 겠습니다.


구룡공원 계단 양측 117개의 석주 앞면에 구룡포 발전에 기여 하신분의 이름이 보입니다.(뒷면 ?)

 


117개의 석주뒷면에 일본 강점기때

구룡포에서 잘나갔던 일본인 이름을 시멘트로 발라 두었습니다.


도가와 야시부로 송덕비를 부수지 않고 ,

충혼탑 아래로 옮기고 시멘트로 발라 두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일본인  도가와 야시부로 송덕비(우측)를 충혼탑(좌측) 아래로 옮기기전 받침대 입니다.

 

 

 

 

 

일제강점기때의 송덕비등을 해방후 대한청년회에서 시트로 발랐는데,

아이러니 하게 일본인가옥전시관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일본가옥전시관을 복원하여야 하는지?

일본인 관광객의 돈을 위하여?

역사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하여?

 

나는 이 거리를 걸을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일본인 관광객은 무얼 느낄까요?

 

시멘트를 걷어내고 기둥의 방향을 바꾸고 구룡포는 선조의 땅이라고 외칠것 같습니다.

 

 

돈에 미친세상 복원 할게 따로 있지 이건 아니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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