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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북도

영천 은해사 중암암을 찾아

by 지너비 2009.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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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2009.12.4일 금) 영천 은해사의 중암암을 찾아 10시경 집을 나섰다.

 

 은해사 중암암(中巖庵)은 

일명 돌구멍 절로 많이 알려진 은혜사의 특색있는 암자 중의 하나 이며,

돌구멍을 통하여 절을 드나들게 되어있고,욕심이 많으면 지나지 못하는 극락문,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깊다는 해우소도 있다.

 

 그리고 중암암과 관계되는 일화가 있는데,

옛날 통도사와 해인사 그리고 중암암에서 수행을 하던 세 분의 도반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절을 자랑했다던 야기..

 

통도사의 한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 문이 어찌나 큰지 한 번 열고 닫으면 그 문지도리에서 쇳가루가 한 말 세 되나 떨어진다"며  은근히 절의 규모를 자랑했다.

해인사에서 온 스님은 "우리 해인사는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는 배를 띄워야만 저을 수 있다" 며 자랑했다고 한다.

두 스님의 자랑을 듣고 있던 중암암 스님은 "우리 절 뒷간은 그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10:55분경 영천 은해사 주차장에 도착한후 매표소에서 차량 출입가능 여부 문의,

평일이라 쉽게 차량통과. (입장료 인 2000원)

 

일주문 통과후  

 

안내도 확인 .  

 

오늘 은해사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후 중암암 탐방예정이었으나 차량 출입이 가능하여 스케즐 재 수립.

 

 백흠암 주차장까지 편안하게 고고씽~  .

 

드라이브 코스가 멋져부려~.

 

 우째 이런일이 백흠암 주차장에 주차후 등산로을 이용하여 중암암까지 산행(50분)예정이었으나,

 백흠암을 통과후 어느새 중암암 주차장에 도착했네요.

 

 

 지금부터 중암암을 둘러 봅니다.

 해우소 입니다.(무지 깊습니다 볼 일 있으면 체험해 보세요)

 돌구멍 해우소는 일반인이 사용 할수가 없고 이 해우소는 일반인이 사용 가능합니다.

 

종암암으로 들어 가 볼까요.

 

김유신장군이 17세 쯤되는 화랑시절 이곳 심신을 단련할 때 즐겨마신 물이라는 연유에서 장군수라고 옛부터 전해지고 있다.

 

중암암에 들어 가려면 틈이 좁은 바위 틈 입구로 들어가야 합니다.(그래서 돌구멍 절)

 

돌구멍 안쪽에 암자가

 

들어가 보죠.

 

 돌구멍 사이로 들어 왔습니다.

 

 아담하고 특색이 있습니다.

 

 

 

  

구경 할 만큼 했으면  돌구멍으로 되 돌아나갑니다.

그 유명하다는 해우소는 그냥 지나쳤네요.

   

 중암암을 둘러보고  바로 위에 있는 삼층석탑이 있는곳으로.

 

 

 

  

삼층석탑 위 바위가 무지하게 크고 틈사이가 통행 가능 한 곳이 많아서 숨박꼭질 이라도 하고 싶네요.

 

 극락문이 어디인지 모르겠당.

 

바위틈 사이로 보이는 또 다른 풍경.

 

중암암 주변는 큰 바위들로 이루어 져 있다.   

 

중암암 위 능선재로 통하는 등산로가 있다.

 

 은혜사에서 출발하여 갓바위을 둘러보고 원점 회귀하는 등산객.

 

 

전설따라 삼천리~

 장군수와 쌀구멍

산세 좋고 물이 맑아 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팔공산 동쪽 기슭에는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룩한 김 유신 장군이 어린 시절 다른 화랑과 함께 지혜를 닦고 힘을 길렀다는 석굴이 있다.

마치 대문처럼 생긴 석벽을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에 뒤로는 높은 산이 버티어 섰고 그 중턱에 매달리듯 아담한 암자 하나가 지어져 있다.  바로 중앙암이다.

어느 해 겨울에 예년에 볼 수 없었던 큰 눈이 내려 팔공산 주위가 온통 설원 천지로 만들었다.

원주 스님은 괴이한 일이라 생각했으나 별다른 도리가 없어 불경만 외우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며칠을 보낸 뒤에 쌀독이 비어갔다.

드디어는 칡 뿌리라도 캐어 먹으면 되겠지만 뿌리는 커녕 가지도 보이지 않았다.

원주스님은 부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체념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서는 옷자락을 물고 당기는 것이었다.

그대로 끌려갔다.

법당 동쪽 눈이 쌓이지 않는 곳이었다.

원주 스님은 사방을 훑어 보았다.

달빛이 눈에 부셔 사방은 대낯처럼 밝았다.

바로 서 있는 뒤편 바위 앞에 쌀이 놓여 있었다.

하루분 정도였다. 원주 스님은 신의 뜻이라 생각하고 감사를 드렸다.

다음 날부터 손가락 크기의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쌀로 생활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입춘이 다가온 무렵 하루는 남루하게 차려 입은 스님 한 분이 찾아왔다.

우선 식량이 걱정되었으나 하루 분이라도 계속 구할 수 있으니 부족한대로 나누어 먹으면 될 것이므로 쾌히 승낙하고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쌀구멍 앞에 가니 어제까지보다도 많은 쌀이 흘러 나와 있었다.

쌀구멍은 어떻게 알았는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사람 숫자에 맞추어 쌀이 흘러 나왔다.

이 사실을 안 거지꼴의 스님이 욕심이 생겼다. 거지꼴의 스님은 드디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조금 떨어진 산채로 숨어 들어가서 산적 앞에서 그 동안의 사실을 상세히 설명하고 거사할 것을 종용하였다.

산적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불쑥 찾아온 중이 너무나 진지하게 수차 강조하니 속는 셈 치고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중의 말이 사실이었다.

산적들은 단 숨에 승방으로 들어가 원주 스님의 목을 자르려 했다.

순간 하늘에 번개가 치드니 거지꼴의 중이 낙뇌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집채만한 바위덩이가 나머지 산적들을 내리 덮을 듯 공중으로 뜨는 것이었다.

원주 스님은 두 손으로 바위를 받아 서너칸 뒤로 물러 놓았다.

그 바위가 바로 삼인암(三印庵)으로 중앙암 뒤편에 있다.

그 후 불제자가 된 산적들중 한사람이 원주스님의 힘의 원천이 무엇일까?

궁금하게 생각한 끝에 원주 스님의 뒤를 밟았다.

그러자 원주스님은 석굴을 지나서 200m 서쪽에 위치한 약수터에 물을 마시러 간 것이었다.

아 저것이구나하고 생각한 중은 그 물을 마셨다.

그리고 그 물을 마신 중은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솟아서 지나가는 행인을 때려 죽이는 등

못된 짓을 일삼았다.

그리고 바윗구멍 앞으로 가서는 구멍을 더 크게 만들면 쌀이 더 많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막대기로 쑤시기 시작하자 꽝 소리와 함께 물줄기가 쏟아져 그 중의 눈을 쳐 죽였다.

그 후 그 구멍에서는 쌀대신 물만 교교히 흐르고 장군수는 인간을 어리석은 곳으로 유혹한다 하여

묻어버렸다고 한다.


바위에 삼인암(三印庵)이라고 쓰여 있네요.

 

 도 닦고 있는 일행.   

  

아찔한 바위위에서 오찬을 하고있는 간 큰 사모님들. 

 

중암암 등산로 옆에 있는 만년송과 바위들.

 

만년송 바위에서 팔공산을 바라보며.

  

바위틈에 뿌리을 내리고 몇 년 동안 ?

  

만년송 옆에 잇는 바위가 누애 같다.

 

만년송 옆 소나무 뭔가 꼬였네.

 

 만년송을 둘러보고 중암암 주차장에서 커피 한 잔후 다시 드라이브.

 

 중암암에서 은해사 방향으로 내려오다 묘봉암으로 향한다.

 

 묘봉암을 향해서~ .   

 

묘봉암.

 

 

묘봉암 뒷편 위쪽에서 바라보니 바위와 암자가 붙어 있다.

 

 

묘봉암 능선에서 건너편 중앙암 바라본다.

 

이제 중암암 묘봉암도 둘러보았으니 백흥암으로 고고씽~  .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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