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시:2012년 1월 27일(금) 맑음
여행지: 경남 김해시 가야사 누리길 따라
여행인원:11명(스타렉스 12인승 랜터)
포항 이동 채선당(08:40)~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10:30 )~대성동유적~
국립김해박물관(11:40)~구지봉~수로왕비릉(12:40)~
김해향교~동상시장 점심식사(13:30~14:30)~봉황동유적지~
김수로왕릉(16:10)~수릉원~연지공원(17:20)~
대성동고분박물관 출발(18:00)~이동 채선당(20:00)
김해 주요 관광지도
김해해반천과 가야의거리
해반천의 이름은 원래 강둑, 냇가를 의미하는 뜻으로 하반천이라 하여 이름을 불러왔으며,
하정마을 아래 국도 14호선 옛길에 하반다리가 부산과 마산을 연결하는
교량역활을 톡톡히 해왔던 하반천을 언제부터인지 '해반천'으로 불리고 있다.
해반천은 나밭고개와 모개정고개로부터 흘러오는 물길을 받아
약7km 해반천을 따라 강동교에 이르게 된다.
시가 연지교에서 삼계동 두곡교 3.6㎞에 이르는 길에
자연석으로 낙차보 6개와 생태관찰로를 만들어 수초를 심고
곳곳에 해반천의 동서간을 다닐수있는 징검 다리를 설치하였다.
그래서 해반천은 삼계에서 김해우체국 앞까지의 수변공원과
인위적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하천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반천은 가야국 해상무역의 영화를 간직한 물길로, 잘 정비된 해반천을 따라 걷다보면,
가야의 향기가 묻어나는 유적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대성동 고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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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고분박물관에서 청동거울 문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청동거울 문양에 12지신과 좌청룡우백호의 방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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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유적
대성동유적은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과 김해패총으로
유명한 회현리 패총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인접하여 김수로 왕릉이 있다.
표고 22.6m의 '왜(애)꼬지'라 불리는 구릉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경성대학교박물관에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차에 걸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
금관가야 지배자집단의 공동묘역으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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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반천옆 가야사누리길을 따라가면 역사적 상징물등을 많이 볼수가 있습니다.
(구지초등학교를 지나 갑니당)
국립김해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은 고대국가의 하나인 가야(加耶)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1998년 7월 29일개관 되었습니다.
가야의 건국설화(建國說話)가 깃든 김해시 구지봉(龜旨峰)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의 문화재를 집약 전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부산·경남 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상과 가야의 성장 기반이 된
변한(弁韓)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가야는 다른 고대 국가들에 비해 역사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유물·유적의 발굴을 통해
가야사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은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고고학 중심 전문 박물관으로 특성화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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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왕관 그리고 왕과 함께 순장되는 힘없는 종들
역사는 흘러가고 아직까지 인권을 말하기에는 멀고 먼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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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봉
수로왕비릉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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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비릉
김해시 구산동(龜山洞)에 있는 가야시대의 능묘로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
허왕후의 왕비릉(王妃陵-국가사적 제 74호)이다.
아유타국(인도)의 공주인 허왕후(허황옥)가 배를 타고 시집 올때 바람과 풍랑을 잠재웠다는
유래가 얽힌 파사석탑(婆娑石塔)이 흥미롭다.
허왕후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열 아들 중 두 아들에게
자신의 성인 허씨를 따르게 하여 김해 허씨 성이 유래되었고,
그로 인해 김해 김씨와 허씨는 혼인이 금지되어 왔다고 한다.
김해향교
동상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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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시장 산호정식당에서 시장에서 사온 호박죽,팥죽, 순대등과
식당에서 주문한 아구찜 닭도리탕으로 점심식사를 합니당.(13:30~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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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유적지의 패총전시관
우리나라 고고학상 최초의 발굴이 이루어진 유적으로써
유물 등을 토대로 가야시대 당시 생활환경 및 국제관계, 문화 등을 밝혀냄으로써 가야의 실체를 규명하였다.
김해 봉황동유적(사적 제2호)은 1907년 우리나라 고고학상
최초의 발굴조사로 유명한 회현리패총(사적 제2호, 1963. 1. 21. 지정)과
봉황대유적(옛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 1983. 12. 20. 지정)이 동일 성격의 유적임을 감안,
이들 유적을 통합해 2001년 2월 5일 사적 제2호로 확대 지정한 것이다.
금관가야의 중심 유적으로 1907년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누차에 걸친 발굴조사의 성과를 통해
가야의 생활과 문화, 사회상, 국제관계 등 그 실체를 보다 명료하게 밝힐 수 있었다.
김해 봉황동(회현리)패총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봉황대 구릉의 동남단에 위치한다.
봉황대 구릉 상부에 위치한 패총은 비교적 정연한 층위 상태를 보이지만 이 부분의 패총은 여러 시기의 문화층이 뒤섞여 있다.
아마도 비, 바람 등의 자연적 여건과 골짜기로 연결된 급경사면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 때문에
반복적으로 층위가 뒤집히는 현상이 생긴 것 같다.
출토유물을 통해 살펴볼 때 대체로 기원전후한 시기부터 4세기 대에 걸쳐 형성된 패총이지만
이러한 여건상 하나의 층위에 다양한 시기의 유물이 뒤섞여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패총에서는 당시 생활 및 문화활동에 사용했던 토기(주로 취사용), 골각패제품(복골, 골촉, 침, 소형칼자루, 장신구 등),
국제교류와 관련한 중국계유물(화천, 청동경), 일본계유물(야요이토기, 하지키) 등 다양한 인공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식생활과 관련한 탄화미, 동물뼈(상어, 돔, 고래, 거북, 기러기, 오리, 꿩, 닭, 멧돼지, 사슴, 노루, 개, 소, 말 등),
패각(굴, 꼬막, 담치, 홍합, 소라, 고동, 백합, 다슬기 등) 등 다양한 자연유물도 같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 풍습과 자연환경 등의 해명에 중요한 근거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봉황동유적 패총전시관은 건축면적 59㎡로써 발굴면을
그대로 전사하여 전시함으로써 현장감을 더해주며 교육효과도 높다.
또한 패총 관련 내용을 각종 안내판 등을 통해 상세히 설명해주고 경관조명을 통해 도시경관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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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동유적지 금관가야 최대의 유적지인 봉황대 사적2호 사적 제2호. 철기시대 초기의 것으로, 높이가 7m, 동서의 길이 약 130m, 남북의 너비 약 30m의 낮은 언덕 위에 이루어져 있다. 구릉의 남쪽에는 회현동의 마을이 인접해 있고, 북동쪽 낭떠러지 밑에도 민가가 들어서 있어 패각층이 드러난 단면과 구릉 위에 흩어진 흰 조개껍데기를 볼 수 있다. 처음 알려진 것은 1907년이지만, 1920년에 있었던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비롯하여 그 뒤 몇 차례의 학술조사를 통하여 이 유적에 대한 문화적 성격과 연대의 개요가 밝혀져서, 한국 선사시대의 유적지 중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지이다. 일련의 발굴을 통하여, 이른바 김해토기(金海土器)라고 명명(命名)된 토기의 조각들이 가장 많고, 도끼와 손칼과 같은 철기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철기가 이미 일상생활의 도구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철기 이외에 골각제품(骨角製品)으로서도 골촉(骨)·골침(骨針) 등과 송곳 같은 찌르개류[尖頭類]가 함께 출토되었다. 김해토기는 종래의 민무늬토기보다 높은 온도로 구워서 만든 발달된 경질(硬質)의 토기로서, 그 특색은 문살무늬나 삿무늬 등의 타형(打形)무늬가 있다는 점이다. 타형무늬는 토기를 단단히 하기 위하여 무늬가 새겨진 방망이로 두드려서 생긴 것이다. 특히 후일에 와서 신라토기(新羅土器)의 모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원시신라토기라고도 한다. 1920년의 발굴 때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때의 돈인 화천(貨泉) 1 개가 나와 이 패총의 상한연대(上限年代)가 밝혀졌고, 또 함께 발견된 탄화미(炭化米)는 한국의 벼를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뒤 34~35년의 발굴을 통하여 한 무리의 돌널무덤과 그 옆의 독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 한 개의 옹관에서 세형동검(細形銅劍)과 청동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이 외에도 남방식 고인돌[南方式支石墓]의 뚜껑돌로 보이는 한 개의 큰 돌이 현재에도 있다.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는 2001. 2. 5일 회현리패총과 더불어 "김해 봉황대 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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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거쳐 올라온 배가 이곳에 당도해 물건을 싣고 내렸다.
가야국 해상무역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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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릉(首露王陵)
김해의 상징적 문화유적으로서 가락국(AD 42~532년) 시조대왕의
수로왕릉(首露王陵)을 찾아볼 수 있는데,
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의 시조이며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을 모신 능침이다.
수로왕은 알 중에서 맨 처음 나왔다 하여 "수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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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앞의 납릉정문(納陵正門)위에는 신어상(神漁像)이라 불리는
석탑을 가운데 두고 두마리의 물고기가 마주보는 문양이 새겨져 있고,
왕릉을 보고 왼쪽에 잇는 비석의 이수에는 태양문(太陽紋)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문양이 인도의 야요디야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닮아 있어,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인도 아유타국의 허왕후가 파사석탑(婆娑石塔)을
배에 싣고 왔다고 전하는 것과 연결시켜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고대의 낭만적 상상력을 부채질하는 좋은 자료이다.
신어문양의 납릉정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
외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숙이게 하는 위엄을 느끼게 한다.
봉분의 규모는 직경 22m~21m, 높이 5m정도이고,
봉분 앞에는 능비(陵碑)·상석(床石)·장명등(長明燈)·망주(望柱)가 있으며,
왕릉경내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崇善殿)을 비롯하여
안향각(安香閣)·곡사전(曲祀典)·제기고(祭器庫)·납릉정문(納陵正門)·숭제(崇祭)
동제(東祭)·서제(西祭)·신도비각(神道碑閣)·문무인석(文武人石)·
마양호석(馬羊虎石)·가락루(駕洛樓)·홍살문·공적비·숭화문 등의
부속건물 및 석조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숭신각(신도비각)은 가락국 역사와 숭선전사가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가락국기』에는 199년에 158세로 수로왕이 붕어하자
대궐 동북쪽 평지에 높이 일장(一丈)의 빈궁(賓宮)을 짓고,
장사를 지낸 후 주위 300보를 수로왕묘(首露王廟)라 하였다고 전한다.
1963년 사적 73호로 지정되었고, 1964년부터 1994년까지
계속적으로 보수공사가 실시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정화되었다.
이 왕릉의 내부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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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왕릉 뒤편 세월이 느껴지는 숲길에서
예전에 구지봉에 있었던 6가야 시조의 알 조형물이 김수로왕릉 옆 호수옆으로 옮겨져 있네용.
예나님 수고가 많으십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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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한옥체험관
수릉원
수로왕과 허왕후가 함께 거닐었던 정원과 같은 이미지로
수로왕릉과 가야왕들의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을 이어주는 단아한 숲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언덕에는 허왕후의 고국인 인도불교를 상징하는 피나무 군락을 조성했다.
대성동고분
우리나라 고대무덤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며 한중일의 문화교류상황을 밝혀주는중요한자료이다.
길이 약 300m, 높이 20m정도의 동서로 뻗은 구릉지대에 옛가야의 무덤들이 있다.
구릉지대로, 경사가 완만해 무덤이 있기에 매우 적합하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걸친 지배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고,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 단계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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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역사테마파크에 갈 예정이었지만 수릉원을 둘러보고나니 17:00 가까이되어서
국립김해박물관 근처에 있는 연지공원을 찾아 가기로 합니다.
연지공원
연지공원은 주변에 김해박물관과 문화의 거리가 위치한 도심 속의 호수공원이다.
9만4000㎡ 규모에 연꽃 광장, 벚꽃터널, 음악분수, 수변데크, 조각공원,
야생화 동산, 미로공원, 야외공연장 등이 있다.
부들, 연, 수련, 물억새, 어리연 등 각종 수초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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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누리길 2시간이면 걸어 갈수 있는길이지만
여유롭게 공부도 하면서 10:30~18:00경 까지 김해 가야사누리길을 거닐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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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에 대하여 많이 배우고 함께하여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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